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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두두ෆ⸒⸒ 2022. 4. 30. 15:50

[책리뷰]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는 누구보다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내가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책. 특히 소설책은 더 읽기 싫어했던 내가? 세상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권유도 있었지만 암튼, 또 내가 궁금하기도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책리뷰]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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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아..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뭐 그런 내용의 책인가? 싶었지만, 심시선이라는 인물과 그에게서 뻗어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 즉 심시선을 말하는 것이었고, 온갖 억압과 차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그래서 책제목이 《시선으로부터,》인데 제목에 쉼표를 넣은 것은 계속된다는 의미로 쓴 것이라고 정세랑 작가는 말한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계속된다는 의미로 쓴 건데요. 힘들 땐 모든 게 다 끝나버릴 것 같잖아요? 절망이 제일 쉬운 감정이니까 절망에 빠지지 말고 쭉 이어지는 부분을 주목하자는 의미예요."라고 말이다. 행복해지려면 시야를 넓히라는 의미도 있었다.

 

《시선으로부터,》에는 제국주의, 전쟁과 학살의 역사,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폭력에 대한 방관 같은 더 다층적이고 복잡한 부조리 등 참혹한 현실이 녹아들어 있지만, 어둡지 않고 재밌게 읽힌다.

주인공 심시선은 6·25 전쟁 와중에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으로 하와이에서 세계적인 화가를 만나 독일 유학길에 오르고, 서울 부암동에 정착한 뒤 작가로 명성을 떨친 1세대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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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인물은 굉장히 많아서 처음엔 '심시선 가계도'를 사진으로 찍어 모니터에 열어두고 읽기도 했다. 두 번째 읽을 땐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고 더불어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공감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다.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역시 정세랑 작가는 평생을 걸어 하고 싶은 이야기도 '평범한 선의'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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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는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의 시작은 심시선 또는 그의 가족 인터뷰의 내용이거나 심시선이 썼던 책의 일부분을 발췌한 부분으로 이를 통해 심시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고,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서 마음에 담아두고도 싶었다.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이 책의 배경은 주인공이 심시선이지만, 심시선이 죽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심시선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절대 제사를 지내지 말라 당부했지만, 10주기가 되자 딸과 아들, 손녀, 손자들은 시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색다른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하와이에 모인 대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걸 보기 위해 살아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것.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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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큰 병을 앓았던 심시선의 손녀 우윤은 와이키키 해변에서 힘든 훈련 끝에 서핑에 성공하고, 커피에 대한 심시선의 예민한 취향을 은밀히 공유했던 막내딸 경아는 하와이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구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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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새 생각을 하며 새를 좋아하는 해림은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새의 깃털들을 구해오는데, 가족들을 새들과 연상시키는 이 대목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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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집안의 사위 태호는 30분 안에 먹어야 맛있다는 말라사다 도넛을 자전거를 빌려다가 베이커리에서 숙소까지 타이머를 재고 경로 탐색까지 해가며 구해온다. 정말이지 이 가족은 하나같이 다들 이렇게 제삿상에 진심이다.

 

그렇게 각자 가져온 것들을 다 늘어놓으니 제삿상은 개판이라기보다는 참.. 다채로워진다.

 

"결함이 있고 실수를 했고 절망도 했고 그랬다 하더라도 괜찮아, 그다음이 항상 있고, 넘어졌으면 일어나면 되고."라며 정세랑 작가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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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 꽃을 비추는 순간 그것이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흰색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빛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거의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흰색요. 그것을 칠십대에야 깨달았으니, 늦어도 엄청 늦은 거지요.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추운 겨울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나는 유령들을 입고 있었다. 유령들은 고운 목도리가 되어주었다. 때때로 투명한 격벽이 되어 눈물과 웃음이 섞이지 않게도 해주었다."

"어떤 것도 흐려지거나 변질되지 않았다. 남들이 나를 발가벗은 뻔뻔한 여자라 할 때에도 내가 개의치 않았던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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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이 문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당시, 많은 분들이 이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분노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이후 피해자를 향해 쏟아지는 2차 가해와 겹쳐 보였기 때문.

 

그 후 소설 판매량도 늘었다. 《시선으로부터,》는 타인을 향한 이해, 다름에 대한 포용을 경쾌하게 녹여내는 데 성공했고, 특히 20~30대 독자들의 호응과 지지를 받았다.

 

 

사진출처: 시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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