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ook

[책리뷰] 나를 견디는 시간 - 이윤주

두두ෆ⸒⸒ 2022. 5. 18. 12:30

[책리뷰] 나를 견디는 시간 - 이윤주


 이 책의 매력은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에만 매몰되지 않는 데 있다. 나를 최후에 떠받치는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책. 맘에 와닿았던 구절을 정리해본다.

[책리뷰] 나를 견디는 시간 - 이윤주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1

나를 견디게 하는 변명들 - 나는 알고 있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 또한 알고 있다. 나의 글들이 나를 변명하고 있음을. 그렇다면 나는 누가 발주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변명하는가.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받지 못하면 외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견딜 내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해받게 행동하면 되지, 왜 이해받기 어렵게 굴면서 굳이 변명하는가 하면, 설득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통이 발생한다. (타인으로부터) 이해는 받고 싶은데 (타인에게) 설득되기는 싫은 꼴통의 고통.

 그런 나를 견디기 위해 썼다. (중략)

 외롭지 않다면 쓰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는, 외로워도 두렵지 않다면 쓸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면 변명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쓰는 동력을 잃게 될 테니. 그런 동력 따위 산산이 잃기를, 나는 오래도록 바라왔다.」 p4-7 작가의 말 중에서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2

깜빡 졸던 오후에 ------------ 첫눈이 지나가듯 - 혹여, 계획한 인생의 처음이 어그러져도, 첫키스가 한심하고 첫 섹스가 엉망이며 첫 직장이 개차반이고 첫눈 오는 날 집에서 막힌 변기를 뚫고 있다 해도, 수많은 다른 처음들을 위해 과거의 처음 따위는 상큼하게 폐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도 말했지 않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 p19

살 만한 때와 ---------------- 살 만하지 않은 때 - 내가 할 일은 욕망의 충위를 분별해, 지나친 꼴값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때 제동을 걸어주는 것이 바로 '살 만하지 않은 때의 나'이다. (중략)

살 만하지 않은 때에 이르러서야 나를 최후에 떠받치는 삶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p27-28

나다운 게 --------------- 뭔데 -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지나치게 설명하는 사람만큼 자기 내면의 '다채로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 또한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너무 자주 말하는 건 위기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오해에 대한 두려움이든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든, 내가 그저 나 자신으로 가만히 있으면 존중받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 사춘기 때 정점을 찍은 뒤 차츰 쇠퇴하는 것이 보기 좋지만, 안타깝게도 잘 버려지지 않는 그것. 따라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을 만나면 살짝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속으로 말을 건넨다. 아 당신, 이상한 데 집착해요. 무서워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난 당신을 정의할 생각이 일단 없어요. 당신의 언어와 어조가 가끔 '당신의 어떤 면'을 보여줄 거고 당신에게 행운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나오는 당신의 행동이 또 '당신의 어떤 면'을 보여주겠지요. 그리고 물론 내가 영원히 모를 나머지의 당신. 그걸 다 합친 무언가가 당신을 구성해요. 그뿐이에요.」.. p36

아프니까 ---- 사람이다 - 몸이 자주 아픈 이에게 왜 그렇게 자주 아프냐고 묻지 말아 달라.(중략) 

아프지 말라는 말보다 때로는 아파도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좀 아프면 어때, 쉬면 나아질 거야. 사람이 아플 수도 있지. 어떻게 맨날 건강해. 이런 심플한 말이, 아픈 사람에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 p41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3

그건 그 사람 ------------------ 마음이에요 -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잠언에 울컥한 젊음들이 그 반작용인지, 자기 마음 다쳤다고 너무 쉽게 남의 마음을 똑같이 헤집으려 손톱을 세울 때가 있다. 넘어가면 안 된다고, 참으면 병 된다고 어떤 이들은 외친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한다. 

자신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이 또 다른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이어서, 어떻게 하면 더욱더 아프게 할까 궁구 하려는 선의가 그들을 위로한다.(중략)

나의 상처는 세상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는, 그 무엇보다 곡진한 나의 정수다.」.. p83. 85


SNS를 ---------욕하지 말라 - 때때로 자기 본위에서 출발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이타에 닿을 때가 있다. 징징거릴 때가 없어서 일기장에 끄적이듯 쏟아낸 글에는 애초에 누구를 위로하겠다는 목적이 없었으나, 글이란 쓴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풍경을 제가 도착한 곳에서 스스로 그려내기도 한다. sns를 떠도는 활자들 가운데 몇몇 글들이 바로 그렇다.」.. p125


「이해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냥 내버려 둘뿐인데. 모르면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가만 보면, 세상에 그런 일이 꽤 있다. 나 편하자고 한 일인데, 상대에게 뜻밖의 배려가 되는 일들, 내가 원하는 배려 역시 그렇다. 당신을 깊이 이해한다는 말보다, 나는 어차피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니 당신은 그냥 당신 자신으로서 살면 된다는 말 같은 것. 」.. p129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4

슬픔이여, ------------ 안녕 - " 슬픔은 굳이 전시될 필요도 없지만 꼭 폐기될 필요도 없다. 내밀히 숨 쉬는 슬픔의 소리를 나는 가끔 집중해서 듣는다. 무릎이 아프면 무릎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듯이, 때로 슬픔의 소리를 타인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얘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타인의 슬픔과 나의 슬픔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다. 아무나 내 무릎을 수술할 수 없듯이, 아무에게나 내 슬픔을 어찌해달라고 응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타인의 무릎도 대체로 성치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성치 않기 때문이다. 얼마나 성치 않은지는 영원히 알 수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만 은밀히 공감할 뿐이다. "」.. p163

 

공감을 ------------ 의심하다 - 나는 공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는 방식에 대하여. 남의 상처에 얼마나 이입하느냐를 놓고 소위 공감력이 있네 없네 하는 '모종의 분위기'에 대하여.

 그 분위기란 자신이 경험한 종류의 상처에만 과몰입하는 형태를 공감이라고 부르는 어떤 흐름이다. 가난의 상처는 가난에만, 배신의 상처는 배신에만, 질병의 상처는 질병에만, 학력의 상처는 희롱에만. 이를테면 실연의 상처가 있는 A는 타인의 실연에 '몹시' 공감한다. 함께 울고 분노하고 심지어 전율할 수도 있다. 그러나 A는 '그러느라' 한겨울 난방이 가능한 방 안에서 잠들 수 있다는 조건에는 무심할 수도 있다. 아니, 무심하기 쉽다.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잠들어야 하는 누군가에게 공감할 여력을 실연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연당한 자에게 A가 느꼈던 것은 공감인가. 까놓고, 자위 아닌가. 아니, 자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차라리 꼰대가 되기를 선택하는 게 나으려나. 동병상련은 진짜 동병에만 상련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어머, 저건 딱 내 얘기야!'라고 인지하는 데는 어떤 품도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어떤 품도 들지 않는 일은 자신을 조금도 '낫게'하지 않습니다. 꼰대는 모름지기'나아지려는'사람이니까요.

 실연에 쓸 에너지를 줄여서, 난방 못 하는 집에 갖다 붓도록 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감은 양이 아니라 넓이로 하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를 넓히는 책을 읽는 데는 필연적으로 품이 든다. 그런 책은 '어머, 딱 내 얘기!'라고 호들갑 떨 기쁨을 주지 않는다. 그런 책은 절대로 '나'의 소중한 상처에 맞장구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말한다.

 너의 상처는 너에게나 성역이라고.
 잔인한가. 그렇지만 인생보다 잔인한가.
 여기까지 쓰다가, 이 글을 '에세이'로 발화하고 있는 나도 참 딱하다 싶다. 언젠가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겠지. 잡문을 써서 세상에 내어놓은 저자가 된 이상, 헛된 고백과 공허한 공감에서 자유로울 리 없으므로, 인생은 정말, 거듭 잔인하다.」.. p183. 184. 185

 

날마다 ----------- 나가리 - 경험은 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으면 좋다고들 하지만, 없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중략)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책만 읽거나 무슨 책을 읽어도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쪽으로 해석해버리는 사람들. 그 많은 책이 다만 제 신념의 아군이다. 

 살아온 시간이 축적되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했다고 판단되는 일)은 많아진다. 그중 몇몇 경험은 유난히 공정하지 못하여, 무방비의 인간을 말미도 없이 집어삼킨다.

 

나는 그 경험뿐 아니라 다른 어떤 경험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최소한으로' 갇히고 싶다. 나의 경험들이 '지금' 내가 닿으려는 하늘, 디디려는 땅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훈수 두기를 원하지 않는다. 경험이 '새겨진다'는 면에서 모든 경험은 일종의 상흔이다. 내가 할 일은 상흔의 화투판을 뒤집어엎어 날마다 나가리로 만드는 것이다. 내 자유를 보전하면서, 주변에 덜 유해한 존재로 나이 드는 방법은 아직 그것밖에 찾지 못했다.」.. p 197. 198. 199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5

어떨 도리가 --------------- 있나 -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을 때 나는 "어쩔 도리가 있나"라고 중얼거린다. 당신의 비극을 위로할 수 없으며 나의 비극이 위로되지 않을 때도 "어쩔 도리가 있나"라고 되뇐다. 지나가는 모든 것, 잊히는 모든 것, 사라지는 모든 것에도 너무 오래 애달파하지 않고 "어쩔 도리가 있나"라고 말한다. 비가 오고 꽃이 지고 새들이 죽고 아랫배가 나오고 누군가 내게 '기다려달라'고 해도 나는, 어쩔 도리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p224

 

 

나를 견디는 시간

[책리뷰] 나를 견디는 시간 - 이윤주

 

 이 책은 삼십 대들만의 내밀한 언어를 담아낸 행성B의 산문 시리즈 [나의 서른에게] 첫 책이다.

 

작가 이윤주에게 책이란, "아픈데, 아픈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아서" 먹는 약과 같고,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어서, 내 삶을 누군가에게 변명하고 싶어서 직접 펜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외롭지 않다면 쓰지 않을 것"이라고...

 

 사실 나도 가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쓰면 백과사전 10권은 족히 넘을 것이라며, 여전히 사는 것에 대해 불안정한 마음을 책이 아니고서라도 일기처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참 마음에 와닿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내 주제에 무슨..  암튼, 나도 요즘 책을 약 삼아 읽고 있는데, 거기서 거기 같은 에세이와는 좀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반성이 되고 위로가 됐던 부분은 나의 슬픔에 빠져 남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점. 사실 엉망진창이지만 어른이니까 멀쩡한 척하고 다니며 이마에 써 붙이지 않아도 모두 으레 그렇다는 걸 내밀히 공감하고 위로받는 부분도 참 좋았다. 그런데 책 중간에 붉은색 페이지의 글은 눈이 아파서 읽기 힘들었다. 왜 그렇게 만드셨을까.. 참 궁금한 부분이다.

 


ⓒ일상기록의 글, 사진 [무단도용, 복제금지, 링크허용]